박영택 연재소설 7 ] 휴머노이드 조이와의 여정: 인류 생존의 길_ 조이의 슬픈 고뇌

 


제7회: 조이의 슬픈 고뇌

조이의 애창곡: 박정현의 <미아(迷兒, 2005년)>

백룡 무리의 추적을 피해 적상호 비밀기지에 숨어든 밤. 기지 요원들은 진 박사(Daddy)의 지휘 아래 기지 방어와 비상 회피 수단을 준비하느라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모모는 진 박사에게 핵심 전력인 조이를 서둘러 회복시키라는 독촉을 받은 듯, 수술실에서 분주했다.

나는 무거운 수술실을 피해 적막이 감도는 라운지로 이동했다. 소파에 기대어 앉자마자 밀려드는 피로와 긴장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깊은 꿈속에서, 슬픔이 서려 있는 아늑한 한 여인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것은 한국 가수 박정현이 2005년에 부른 ‘미아(迷兒)’라는 곡이었다.

"또 다시 그 길을 만났어. 한참을 걸어도 걸어도, 익숙한 거리 추억투성이. 미로 위의 내 산책 벗어나려 접어든 길에, 기억이 없어서 좋지만, 조금도 못 가 눈앞에 닿는 너의 손이 이끌었던 그때 그자리

길을 잃어버린 나, 가도 가도 끝없는 날 부르는 목소리, 날 향해 뛰던 너의 모습이 살아오는 듯 돌아가야 하는 나, 쉬운 길은 없어서 돌고 돌아가는 길. 그 추억 다 피해 이제 다 와가는 듯

나의 집 저 멀리 보여서, 발걸음 재촉하려 하다, 너무 많았던 추억뿐인 곳, 날 항상 바래다 주던 이 길 뿐인데, 우두커니 한참 바라보다가, 어느새 길 한 가득 니 모습들, 그 속을 지나려 내딛는 한걸음, 천천히 두 눈을 감고서, 길은 어디에

(길을 잃어버린 나 가도 가도 끝없는) 날 부르는 목소리, 날 향해 뛰던 너의 모습이 살아오는 듯 돌아가야 하는 나, 쉬운 길은 없어서 돌고 돌아가는 길, 추억 다 피해 이제 도착한 듯해 이젠"

‘길을 잃어버린 나! 걸어도 걸어도… 가도 가도 끝없는… 돌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가사가 뒤죽박죽 섞여 귓가에 맴돌 때,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조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작은 입술의 움직임만 보일 뿐,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에서는 휴머노이드에게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온전히 인간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짙은 슬픔과 애잔한 고뇌가 느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침을 삼켰다.

재생, 그리고 허무함에 대한 고백

조이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마치 상담소를 찾은 내담자처럼 차분하고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ComPa! 수혈 고마워요. 미아라는 오래전 노래 아세요? 죽을 고비에서 다시 살아나고 나면 ‘또 왜?’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떤 회복의 기쁨도 없었다. 오직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허무함만이 배어 있었다.

조이는 말을 이어갔다. “죽음의 의미가 뭔지…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서 재생, 재생! 다시 살아난 기쁨도 없이… 눈 뜨자마자 열 손가락이 움직이는 모습을 수없이 반복하여 바라봐야 하는 허무함… 비참함… 단 한 번만 죽는 인간이 부럽기도 하고…”

그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수히 오가는 자신의 존재를, 끝없이 길을 잃고 헤매는 미아에 비유하고 있었다. 문득, 나 박지문 또한 이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상황 속에서 조이처럼 참다운 길을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자각이 들었다. 자신을 미아 같은 신세라고 부르짖는 조이가 불현듯 측은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나는 한 번도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길'을 찾기 위해 고뇌하며 절규하는 조이를 마주하기가 부끄러웠다.

그때, 갑작스럽게 진 박사가 라운지에 들어서며 정적을 깼다. 불쑥 나타나기를 즐기는 듯한 그의 모습은 어찌 보면 당당하기도 했다.

“백룡이 잠시 철수한 것 같네요. 어떤 때는 (휴머노이드들이) 집요하지 않거든요. 표적이 사라지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집착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진 박사의 호탕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조이의 표정은 여전히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ComPa의 새로운 직위: HHG 동아시아 조정관

백룡의 위협이 잠시 걷히자마자, 진 박사는 밤사이 급조된 조직 구도를 발표하며 나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나의 새로운 직책은 'HHG 동아시아 조정관(HHG Coordinator in East Asia)'이었다. 지역에서의 정보수집과 작전 조정을 수행하는 역할이다. 총책임자는 진 박사 본인이, 부책임자는 모모가 맡게 되었다. 나머지 요원들은 에이전트로만 호칭되었다.

작전 회의실에서 모모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동아시아 분국에 대해 설명했다.

“동아시아 분국은 HHG 최대 작전 기지로서 후쿠오카에 있으며, 1개 군단 규모입니다.”

그녀는 전력의 상세 내역이 적힌 비밀 문건을 잠시 동안 보여주었다. 그 압도적인 전력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 병력 1,200

  • 스텔스 항공기 및 고속 드론 4개 편대

  • 스텔스 원자력 잠수함 및 함정 2개 전단

  • 로봇 정찰 4개 대대, 유도 미사일 공격 2개 대대

  • 기동 지원 로봇 1개 중대

  • 기지 방어 4개 대대 등…

모모가 다소 서툰 한국말로 장황하게 설명했다. “우리가 상대하는 중국, 러시아, 북한의 전력 규모에 비하면 우리가 상당히 열세라고 할 수 있지요. ComPa와 오 상사에 대한 신변 처리는 차질 없이 진행할 테니 걱정 마세요. 이제는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국제 외교관으로서의 대우를 받을 겁니다.”

그때, 회의실 문이 덜컹 열리더니 오 상사가 어색하고 당황한 기색으로 들어왔다. 나를 발견한 그는 반가움과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얼마나 걱정했는데! 아! 무전기는 왜 꺼놓고! 누구하고 도망간 줄 알았네!”

다소 상기된 오 상사는 눈알을 위아래로 흔들며 떠들어댔지만, 아직 자신이 처한 상황이 국제 비밀 조직에 채용된 것임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오 상사의 모습이 몹시 재밌었는지 모모는 몸을 돌려 애써 웃음을 참았다. 잠시 후 모모는 오 상사를 대상으로 상황 설명을 계속했는데, 모모가 자주 영어를 사용하고 오 상사가 되묻는 식의 대화가 이어지며 서로를 탐색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회의실 구석, 여전히 슬픔을 지닌 채 조용히 있던 조이도 이들 둘의 인간적인 모습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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