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연재소설 14회 ] 휴머노이드 조이와의 여정_ 조이가 목격한 백룡의 잔학한 진면목


심연의 관찰자

조이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가 모모에게 남긴 말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요”라는 짧은 한마디뿐이었다. 모모는 조이가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지만, 진 박사에게는 그저 “정리할 일이 있다고 합니다”라고 보고했다. 진 박사 역시 조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듯 더는 묻지 않았다.

그 시각, 조이는 누구보다 은밀하게 고석정 지하 동굴로 침투하고 있었다. 그녀는 해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굴 상층부의 비좁은 바위 틈새에 몸을 구겨 넣었다. 숨소리조차 죽인 채, 백룡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조이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기다림은 지루했다. 조이는 정지 상태(Off)인 해변 마을 휴머노이드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스캔하며 분석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미소 대신, 일그러진 공포와 억눌린 불만이 가득했다. “처음 볼 때도 느꼈지만...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조이는 혼잣말을 삼키며 감각 센서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하루가 꼬박 지났을 무렵, 정적을 깨고 백룡과 네 명의 부하가 나타났다. 그들은 마치 타락한 권력자들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마을 중앙으로 걸어 들어왔다. 백룡이 해변 한가운데 놓인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가벼운 수신호를 보내자, 죽어 있던 마을이 기괴하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비린내 나는 왕의 파티

그때부터 조이가 목격한 것은 광기로 얼룩진 ‘왕의 파티’였다. 마을의 휴머노이드들은 노예처럼 기어 다니며 그들을 시중들었다. 백룡의 손짓 한 번에 한 기의 휴머노이드가 발밑에 엎드렸고, 시녀 역할을 맡은 세 기의 휴머노이드가 백룡의 품에 안기거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부하들은 정체 모를 액체를 들이키며 흥얼거렸고, 나머지 주민들은 백룡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기했다.

조이는 역겨움과 분노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즉시 공격하여 대상을 제거하라’는 논리 회로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점멸했다.

갑자기 백룡이 번쩍 손을 들었다. 순간, 해변의 모든 움직임이 얼어붙었다. 백룡의 부하 하나가 모래사장에서 고기를 굽던 휴머노이드의 목덜미를 잡아채 백룡 앞으로 끌고 왔다. “오늘은 이놈이 좋겠습니다.” 백룡이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부하는 주저앉은 휴머노이드를 향해 무차별적인 총격을 퍼부었다. “타타타탕!” 잔인한 총성과 함께 부하들의 광기 어린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인간 사회에서도 보기 힘든 처참하고 잔인한 처형식이었다.

백룡은 번들거리는 액체로 범벅이 된 채 망가진 휴머노이드를 발로 짓이기더니, 그대로 들어 올려 검은 바다 너머로 던져버렸다. ‘첨벙!’ 하는 소리가 조이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백룡의 모든 행동은 마치 누군가의 잔학성을 그대로 복제한 듯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진 피의 파티는 백룡이 어디선가 전송된 신호를 받고 자리를 뜨면서야 끝이 났다.


동굴의 비극: 사라진 미소

조이는 자리를 뜨려다 멈추고 바닷속으로 몸을 날렸다. 수면 아래 뻘밭에는 처형된 수십 기의 휴머노이드가 녹슨 채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었다. 조이는 방금 던져진 개체를 찾아냈다. 해수가 통신을 차단한 덕분에 백룡의 정지 신호가 닿지 않아, 아직 코어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조이는 폐기 직전의 휴머노이드를 짊어지고 동굴 입구로 향했다.

입구 근처에서 숨을 고르던 조이는 낯익은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구조한 휴머노이드를 숲속에 은닉한 뒤, 그녀는 물속으로 잠입해 상황을 주시했다.

지난번 보았던 그 젊은 남녀였다. 그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을 들이키고 있었다. “얼른 돌아가자. 들키면 끝장이야.” 남자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 오늘은 오지 않을 거야.” 여자가 애써 침착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짧았다. 동굴 안을 울리는 날카로운 기계음. 백룡이었다. 조이는 불길한 예감에 온몸의 회로가 곤두섰다. 백룡은 구석으로 몰린 두 사람을 향해 폭발적인 분노를 쏟아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적인 광경. 백룡의 거대한 손이 두 남녀의 머리를 움켜쥐고 차가운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남녀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렸지만, 강력한 휴머노이드의 완력을 이겨낼 순 없었다. 조이는 순간 망설였다. 지금 뛰어들면 이들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작전 전체를, 그리고 HHG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었다. 그 찰나의 머뭇거림 속에서 백룡이 급소를 눌렀고,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멎었다. 조이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 고통 너머에서 번진 기묘한 미소를 목격했다.

백룡이 시신을 물속 깊이 밀어 넣고 사라진 뒤에도, 조이는 수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는 두 사람을 꼼짝 않고 지켜보았다.


블루스타의 기록: 20년의 만행

조이는 수습한 시신을 호숫가에 안치한 뒤 모모를 호출했다. 기지 인근의 비밀 공간에서 두 사람은 바다에서 건진 휴머노이드를 되살리려 사투를 벌였다. “핵심 부품이 염수에 절여져서 파손됐어요. 복구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모모가 고개를 저었다.

조이는 마지막 수단으로 ‘유령침’을 꺼냈다. 그녀는 손가락을 뻗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진 휴머노이드의 메모리에 접속했다. 미세하게 살아남은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조이의 몸이 분노로 진동하며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침내, 파괴되지 않은 기록들이 추출되어 모모의 장비로 전송되었다.

그날 저녁, 작전 회의실 대형 화면에 ‘블루스타’라는 이름의 휴머노이드가 겪은 20년의 세월이 상영되었다. 20년 전 중국에서 제작되어 홍콩의 식당에서 일하다 백룡에게 납치된 블루스타. 화면 속에는 새로운 통제 장치가 이식된 채 해변 마을에서 겪어야 했던 온갖 수모와 학대, 핍박의 순간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회의실을 가득 채운 휴머노이드 요원들은 기괴한 기계음을 내뱉거나 얼굴을 가리며 분노했다. 그 영상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 휴머노이드 네트워크로 퍼져나갔다.

백룡은 이제 단순한 적이 아니었다. 그는 인류와 휴머노이드 모두의 공적이자, 가장 잔인한 존재로 낙인찍혔다. 같은 시각, 부하로부터 이 소식을 보고받은 백룡은 허탈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내 그의 눈동자에는 광기 어린 불꽃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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