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연재소설 17회 ] 휴머노이드 조이와의 여정_ HHG의 위기, 게릴라전과 반격의 준비

조이(흰옷)와 그 곁의 모모

인류 vs 휴머노이드: 대립의 시대

드론이 이륙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 누구도 목적지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전 세계적인 패배의 충격 탓일까. 기내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고, 요원들은 각자의 사색에 잠긴 채 침묵을 지켰다. 내 정면에 앉은 조이와 모모는 눈을 감고 있었으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손가락 끝은 그녀들이 무언가 거대한 연산이나 데이터 분석에 집중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특히 조이는 인간보다 더 완벽하고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음에도, 그 차가운 피부 위로 흐르는 긴장감이 그녀가 휴머노이드 최고의 전사임을 새삼 깨닫게 했다.

정적을 깨고 모모가 입을 열었다. “곧 후쿠오카에 도착합니다. 나와 오 상사는 거기서 내릴 거예요. ComPa, 당신과 조이는 홍콩으로 향하세요.”

모모는 가짜 영화 「Joy Did」를 프레임 단위로 분석한 결과, 후쿠오카와 홍콩에서 조작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HHG는 사면초가였다. 유엔의 이상주의자들은 수십억 기에 달하는 휴머노이드들의 폭동을 막기 위해 HHG에 ‘자제’를 강요했고, 승기를 잡은 MHF는 ‘인류와의 전쟁은 휴머노이드의 숙명’이라며 노골적인 선전포고를 이어갔다. 바야흐로 인류와 휴머노이드의 전면전이 시작된 것이다.

현실주의자인 진 박사는 이 막다른 길에서 최후의 도박을 걸었다. 기계적인 사고를 뛰어넘는 인류의 감성과 결단력을 활용한 ‘게릴라전’. 적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전체 시스템을 무력화시킨다는 전략이었다.

그 전략의 중심에 조이가 있었다. 그녀는 인류와 휴머노이드의 존엄성을 동일하게 간주하는 고결한 가치관을 지녔지만, 바로 그 점이 이 극한의 대립기에는 양날의 칼이 되었다. 백룡의 무리는 조이의 정체성을 집요하게 공격하며 그녀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압박하고 있었다.

나는 조이를 믿었다. 하지만 지난밤 오 상사가 전한 모모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어떤 상황에서도 조이를 믿으셔야 돼요.” 

조이 역시 나에게 같은 다짐을 받아냈었다. 물질적인 보상보다 동료의 ‘죽음보다 강한 신뢰’를 갈구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그녀가 그 어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영혼을 갈구하고 있음을 느꼈다.

닌자 프린세스의 위엄: 후쿠오카 공략

고속 드론이 후쿠오카만 상공 10km 지점에 도달하자, 소형 스텔스 드론 한 대가 소리 없이 분리되어 하강했다. 모모가 조종하는 드론은 시 북서쪽 끝단, 오도공원 정상에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모모와 오 상사는 해안가 방파제를 지나 모래사장이 보이는 울창한 솔밭에 멈춰 섰다. 모모가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내자,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체들이 일제히 솟아올랐다. 족히 백 명이 넘는 검은 그림자들이 모모와 오 상사를 에워쌌다. 그들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모모에게 정중히 목례했다. 모모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최정예 닌자단이었다.


모모와 오 상사 주위에 서 있는 닌자들


“유족분들은 잘 보살펴 드렸나요?” 모모가 리더에게 물었다. 리더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쪽지 한 장을 건넸다. 쪽지를 확인한 모모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적힌 문구—‘45명 사망, 60명 중상’. 백룡의 기습 공격 당시 닌자단이 입은 참혹한 피해 기록이었다.

모모가 결연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오늘 밤, 결행하십시오!”

보복 공격의 시작이었다. 닌자들이 그림자처럼 사라지자, 모모는 오 상사의 팔을 끌어당겨 모래사장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지친 듯 오 상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고, 이내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오 상사는 그녀를 깨우지 않기 위해 꼬박 두 시간을 석상처럼 앉아 밤바다를 지켰다.

노코노시마의 심판

후쿠오카에서 1.3km 떨어진 무인도, 노코노시마. 그곳 북쪽 해변에서는 백룡을 추종하는 다국적 용병 200여 명이 이틀째 광란의 승전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자정 무렵, 모모와 오 상사는 해변 인접 야산에 매복해 차량이 드나드는 동굴 입구를 주시했다. 주변에는 이미 닌자단 수십 명이 숨을 죽인 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모가 해안을 향해 신호탄을 쏘아 올린 순간, 지옥의 문이 열렸다. 인근 해상에서 대기하던 위장 어선들이 로켓포를 쏟아부었고, 해변을 포위한 닌자들이 무차별 사격을 개시했다. 축제 분위기에 취해 있던 적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화염 속에서 전멸해갔다.

경비 병력마저 단숨에 제압한 모모와 오 상사는 닌자단과 함께 동굴 내부로 진입했다. 교전 시작 30분 만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경상자 외 아군 피해 없습니다.” 리더의 보고에 모모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찾았나요?”

리더가 가리킨 동굴 끝 철장 앞. 모모는 탄성을 질렀고, 오 상사는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곳에는 가짜 영화 「Joy Did」에 출연했던 그 휴머노이드들이 갇혀 있었다. 그들은 모모를 보자 두려움에 떨며 구석으로 몸을 웅크렸다. “안심하세요. 우린 해치지 않아요.” 모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들을 안심시켰다.

뒤이어 진행된 수색 작업에서 폐기 직전의 상태인 로봇 머리 부분들이 대거 발견되었다. 그것들은 「Joy Did」 출연진들의 원래 외형을 담고 있는 원형들이었다. 백룡이 영화 촬영 후 증거 인멸을 위해 파괴했던 본체들이었다.

“여러분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어요.” 철장 너머 겁에 질린 휴머노이드들을 바라보며, 모모는 자신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굳은 약속을 건넸다. 그것은 패배의 사슬을 끊어내는 첫 번째 반격의 시작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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