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지하 동굴의 휴머노이드 마을: 백룡의 이중성
지하 동굴의 해변 마을: 백룡의 기억 속 놀이터
조이가 주도하는 지하 공간 정밀 조사가 이틀째를 맞이하던 날, 축구장 두 배 크기에 달하는 이질적인 공간이 발견되었다. 조이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통신망을 탔다. “ComPa, 지금 당장 직접 와서 봐야겠어요.”
나는 진 박사의 지시에 따라 방사선 치료 셀을 나와 방호복을 챙겨 입고 단독으로 지하 동굴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하자 조이를 쏙 빼닮은 ‘제시’라는 휴머노이드가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조이의 이름을 언급하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이가 ComPa를 잘 모시고 오라던데요. 아주 사랑스러운 목소리로요.”
제시는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나와 조이의 관계를 떠보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태도가 싫지 않았지만 일부러 무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조이가요? 그럴 리가요. 난 조이의 눈높이에 한참 모자라는 사람일 텐데요.”
“정말이라니까요!” 제시가 다음 말을 이으려던 찰나, 귓속 이어피스를 뚫고 고주파의 신호음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조이가 보낸 경고임이 분명했다. 나는 급히 이어피스를 떼어내야 했다.
제시는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앞장서 나갔다. 좁은 동굴 미로를 지날 때마다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묘한 거북함이 느껴졌다. 그녀가 전혀 기계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시간쯤 곡예 하듯 미로를 헤친 끝에, 조이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비치는 동굴 입구에 도달했다. 조이는 조용히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동굴 내부는 퀘퀘한 악취와 미지근한 공기가 방호복 안으로 눅눅하게 밀려들어 왔다.
조이가 손바닥을 들어 동굴 안쪽을 비추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물빛에 반사된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해변 마을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풍경 그대로였다. 하지만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마을 곳곳에 배치된 휴머노이드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저마다의 동작을 취한 채 굳어 있었다. 줄잡아 서른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누군가 이들을 집단으로 통제하고 있어요.” 조이가 나직하게 설명했다. “지금은 정지 상태지만, 작동 신호가 떨어지면 이들은 이 마을의 주민이 되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겠죠.”
제시가 조이를 보며 자신의 경험을 보탰다. “우리도 태어나면서 수많은 기억을 이식받아요. 제작자가 의도한 강렬한 기억들—첫사랑과의 유희, 향수, 영광의 순간 같은 것들이 특별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떠오르죠.”
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곳은 북한의 어느 해변 마을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아요.”
나는 이 정교하고 생생한 지옥도 같은 마을 모습에 당황하며 물었다. “대체 왜 이런 걸 만든 거지? 얼마나 걸렸을까?”
조이의 표정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숙련된 기술자들이 붙으면 한 달이면 충분해요. 백룡이 지나는 길목에 설치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의 ‘놀이터’가 분명하겠죠. 이들이 깨어나면 외부인에게는 극도로 적대적일 겁니다. 이만 돌아가죠.”
조이의 절망: 판단의 오류
기지로 철수하는 내내 조이의 안색은 어두웠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뱉거나 괴로운 듯 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나 역시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켰다.
진 박사 주재로 다시 회의가 소집되었다. 모모가 작전 결과를 브리핑하는 동안, 조이는 회의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옆에서 지켜본 그녀의 피부색은 화가 난 듯 수시로 변하며 붉게 상기되었다. 조이의 불안함은 회의실 전체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결국 참다못한 모모가 조이를 향해 물었다. “조이, 대체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 거죠?”
조이가 나를 한 번 쳐다본 뒤, 모두를 둘러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내뱉었다. “아무래도 내 판단이 틀린 것 같습니다. 그(백룡)는 인간을 놀잇감으로 여기고 있어요. 지하 동굴의 생존자들도 그에게는 그저 애완동물에 불과했던 겁니다. 미안하지만, 협상이나 포섭 같은 건 이제 꿈도 꾸지 마세요.”
조이의 폭탄 선언에 회의실은 차가운 침묵에 잠겼다. 진 박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작전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날 이후 한동안 조이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대신 제시가 가끔 내 곁을 지키며 말상대가 되어주었고, 오 상사는 하루 종일 모모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바빴다.
치료 셀에서 피어난 뜻밖의 감정
나와 같은 격실을 쓰는 오 상사가 휘파람을 불며 방으로 들어왔다. 후속 치료 때문에 사흘 만에 마주하는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들떠 있었다.
나는 슬쩍 넘겨짚어 질문을 던졌다. “같이 살기로 했습니까?”
오 상사가 자지러지게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거, 거기까지는 아니고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조이도 압니까?”
그는 횡설수설하며 모모와의 관계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마침 제시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오 상사는 작전 투입 이후 치료 셀에서 모모와 단둘이 보낸 시간 동안 나누었던 대화들을 쏟아냈다. 그는 한참을 들뜬 목소리로 떠들더니 결연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팀장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이번 작전만 끝나면 정식으로 프로포즈할 겁니다.”
나와 제시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지의 거의 모든 요원이 이 둘의 수상한 기류를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비극의 서막
작전의 방향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진 박사조차 조이와 모모의 판단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기지 내에서 두 사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정적을 깨고 고석정 부근 강가에서 시신 두 구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시신 수습 현장에 다녀온 모모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우리에게 말했다.
“동굴 속의 그 젊은 남녀예요... 익사한 채 발견됐습니다.”
평화로운 지하 생활을 꿈꾸던 그들의 비극적인 최후는 백룡의 이중성이 가져올 거대한 재앙의 시작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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