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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가 다른 휴머노이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
제15회: 백룡의 거대 전략: HHG와 조이의 참패
DMZ의 연극: 텅 빈 승리
나와 조이는 MHF의 대규모 기습이 시작되기 직전, 간신히 기지로 복귀해 정면 방어선을 맡았다. 기지의 후면과 상층부는 진입로가 협소해 소수의 인원으로도 방어가 수월했지만, 정면은 달랐다. 밀려드는 휴머노이드와 전투 로봇들은 마치 거대한 검은 장막이 기지를 덮치는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 나는 근접하는 적들을 타격하며 방어선을 유지했고, 조이는 최전방에서 폭풍처럼 적진을 휘저었다.
조이의 움직임은 경이로웠다. 적들의 몸에서 분출된 정체 모를 액체로 온몸이 뒤덮인 채, 그녀가 초고속으로 회전할 때마다 마찰열로 인한 뜨거운 증기가 방사형 수증기 기둥을 만들며 뿜어져 나왔다. 전투 상황실에서는 진 박사와 모모의 고함 섞인 지휘 소리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나는 이번 공격의 주역인 백룡을 찾기 위해 눈을 번뜩였지만,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이에게 무력하게 파괴되는 적들은 너무나도 쉬운 상대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돌연 조이가 나의 팔을 잡아채며 전투 상황실로 뛰어 들어갔다. “이상해요! 백룡도 없고, 적들의 수준이 너무 낮아요. 이건 정예 부대가 아닙니다!”
방금 전까지 호탕하게 웃으며 전황을 낙관하던 진 박사와 모모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상황실 단말기로 보고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고를 확인하는 진 박사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모모는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이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비밀기지 몇 개를 제외하고... 전 세계 HHG 거점이 다 무너졌어요.”
썰물 뒤에 남은 파멸
공격이 시작된 지 겨우 30분 만에, 그토록 거세게 몰아치던 적들이 썰물처럼 사라졌다. 그제야 나는 백룡의 진짜 의도를 깨달았다. 모모가 당황한 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백룡에게 당했습니다. 우리 주력을 이곳으로 유인해 발을 묶어두고, 방심한 틈을 타 전 세계 주요 기지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어요. 파리, 에든버러, 알마티, 후쿠오카, 마카오, 카이로, 바그다드, 밴쿠버... 심지어 북극 기지까지 전멸했습니다.”
조이가 힘없이 벽에 기댔다. 그녀의 눈에서 검푸른 냉각 액체가 눈물처럼 흘러내려 목덜미를 적셨다. “이곳만 지키면 이길 수 있다는 나의 오만이 이런 참극을 불렀네요. 백룡을 너무 얕봤어요.” 조이의 눈빛에는 분노와 수치심, 그리고 거대한 무력감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그 시각, 파리의 밤하늘. 백룡은 에펠탑 꼭대기 첨탑에 앉아 시가를 물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연출한 ‘조이와 한국 특수요원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이 90% 이상의 적중률로 실현된 것에 전율에 가까운 기쁨을 느꼈다. 익산에서 해변 마을까지, 정의의 사자인 양 우쭐대던 조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백룡은 파리의 밤이 시끄러울 정도로 박장대소했다.
“공존? 그런 허황된 망상을 영화로 만들어 전 세계에 보여주지.” 백룡은 그동안 은밀히 녹화해온 자료들을 편집하여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연대가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폭로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광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하이, 히틀러(Heil Hitler)!”
Joy Did: 조작된 진실
전투 다음 날, 기지는 상실감에 빠져 정적만이 흘렀다. 진 박사는 사태 수습을 위해 핵심 요원들을 이끌고 유엔본부로 떠났고, 모모가 남은 기지를 지휘했다. 그런데 갑자기 기지 내 휴머노이드 요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제시가 조이의 방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며 외쳤다.
“조이, 얼른 나와 봐요!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어요!”
제시가 벽면에 비춘 홀로그램 화면에는 붉고 굵은 글씨의 제목이 떠 있었다.
「Joy Did (조이가 했다)」
이어진 30분짜리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첫 장면에서 조이가 어린 휴머노이드를 쇠망치로 내리치고 잔인하게 짓이기는 모습이 등장했다. 뒤이어 백룡 일당이 저질렀던 모든 만행의 주인공이 조이, 모모, 제시, 그리고 나와 오 상사로 교묘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휴머노이드 납치와 인신매매, 강제 노역, 지하 마을 생존자 학살, 그리고 그 젊은 남녀를 물속에서 살해하는 장면까지... 너무나 정교하게 조작되어 우리조차 화면 속 인물이 우리 자신인지 의심할 정도였다.
“이미 전 세계 네트워크에 퍼졌어요. 복구 불가능입니다.” 제시의 목소리가 떨렸다.
살기등등한 표정의 요원들이 우리를 향해 몰려왔다. 그때 모모가 단상 위로 올라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이 영화는 백룡의 비열한 프로파간다일 뿐입니다! 현재의 딥페이크 기술로 반나절이면 만들 수 있는 가짜입니다. 백룡은 이 영상을 유포하기 직전, 여러분의 동료들을 학살했습니다.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다른 기지에 연락해 보십시오!”
제시가 모모의 연설을 실시간으로 네트워크에 전송했지만, 한 번 번진 불신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백룡을 새로운 구세주로 추앙하는 세력들이 급격히 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그날 자정 무렵, 오 상사가 나를 찾아와 긴박하게 속삭였다. “새벽 4시에 출동합니다. 모모 대장님의 직명입니다.”
출발 장소에는 날렵한 최신예 스텔스 드론이 대기하고 있었다. 기내에는 이미 무장을 마친 모모, 조이, 제시, 오 상사가 비장한 각오로 앉아 있었다. 모모가 짤막하게 명령을 하달했다. “아바타부터 해결합시다.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입니다.”
드론은 소리 없이 어둠을 뚫고 초고속으로 이륙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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