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영택 전 대진대 통일대학원장
산정호수 적상호의 비밀기지
동쪽 상공에서 몰려온 고속 드론 한 대가 우리 머리 위로 급강하했다. 문이 열리자, 나는 조이의 무거운 몸을 부축해 경사진 계단을 따라 드론 내부로 뛰어들었다. 곧바로 한 여인의 지휘를 받는 요원 두 명이 조이를 구석의 철제 테이블로 옮겼다. 여인은 지체 없이 조이에게 응급처치를 시작했고, 조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드론은 거의 진동이나 소음 없이 밤하늘을 찢으며 어디론가 질주했다. 나는 총을 쥔 채 무장 상태였지만, 드론 내부의 그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조이뿐이었다. 약
마침내, 양손과 흰색 가운 곳곳에 조이의 체액을 묻힌 작은 체구의 여인이 내게로 다가왔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그녀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예리했다.
그 여인이 말했다. “모모라고 합니다. 조이의 주치의랄까요? 지금 무주에 위치한 적상호 기지로 가고 있어요. 이 정도만 브리핑하라는 지시를 받아서…”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마치 오랫동안 조이를 돌봐온 보모처럼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로 돌아갔다.
미륵사지로부터 약
반인반봇(半人半Bot) Daddy와의 조우: 유엔 산하 비밀조직의 수장
고속 드론이 완전히 멈추고 긴 통로와 연결된 문이 열렸다. 요원들이 조이를 실은 테이블을 맹렬하게 밀고 통로를 가로질러 뛰어갔다.
그때, 통로 끝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앞으로 걸어왔다. 리더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악수를 청했다.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한 초인류(超人類)의 감촉이었다.
닥터 진이 말했다. “닥터 진이라고 하오. 허락 없이 모셔와 미안합니다. 조이가 나를 Daddy라고 부르죠.”
나는 고개를 들어 백발의 그를 응시했다. 그는 한쪽 눈을 포함해 고도의 초인적 로봇 기술이 결합된 반인반봇(半人半Bot)이었다. 이는 신체의 일부가 심각하게 손상되었을 때 엄격한 인성 심사를 거쳐 시술되는 최고 기밀 기술이었다. 통제되지 않는 반인반봇이 엄청난 위력으로 범죄에 악용되는 비율이 높았기에, 보안 통제가 용이한 휴머노이드를 선호하는 것이 작금의 추세였다.
Daddy, 아니 진 박사가 질문했다. “조이는 지금 위험한 상태입니다. ComPa라고 호칭해도 되죠?” 나는 그의 곁에 있는 외국인들의 국적을 재빨리 추측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 박사가 이어서 말했다. “HHG(Human and Humanoid Group)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동안 도움을 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는 진 박사의 말을 듣고서야 조이와 관련된 전반적인 상황, 그리고 이 조직의 실체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HHG는 '휴머노이드와 인류의 평화적 공존을 목표로 설립되어 이에 반하는 활동을 억제하는 비밀 조직'이라는 소문만 들었었다.
내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HHG요? 나는 현역이고 공무를 수행 중이라 복귀해야 합니다!” 진 박사와 내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한순간에 포로가 된 듯한 절망적인 느낌에 사로잡혔다.
진 박사가 손을 저으며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안심하시오. 이미 귀국의 안보 책임자와 현재 상황을 공유했고, 김 박사… 그 작자도 별문제 없으니 걱정 마시오.” 그의 목소리에는 압도적인 힘이 실려 있었고, 그 여파로 아마도 철 구조물로 보이는 통로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 진 박사가 무슨 보고를 받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하자, 기지 내부에 날카로운 비상벨이 울려 퍼졌다.
진 박사가 짤막하게 말했다. “백룡의 무리들이 적상산 초입까지 쫓아 왔소. 잠시 모든 파워를 OFF 시켜두려 하니 나중에 다시 봅시다.”
진 박사는 무리들과 함께 통로 끝으로 사라졌다. 나도 반사적으로 통신기의 전원을 껐다. 그때 통로 끝에서 모모가 오라는 손짓을 했다.
ComPa의 채혈과 HHG 채용: 운명의 계약
모모가 나를 안내한 곳은 첨단 수술실이었다. 조이는 수십 개의 선들에 연결된 채 철제 테이블에 누워 있었다. 나는 조이의 위험 상태가 인간의 어떤 상태에 해당하는지 몰라 적절한 표현이나 말을 찾지 못하고 조이의 가슴 부위에 시선이 머무는 것에 당황하여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색한 나를 보고 모모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아름답죠? 조이가 생물일까요? 그냥 로봇일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모모가 나를 뚫어지게 보다가 애원하듯이 말했다.
“조이를 위해 피를 좀 주실래요? 인간의 혈액을 정제하고 특수 처리해서 체액을 만든다는 건 아시죠? 그게 정자 제공과 같아서… 조이가 원할 것 같은데, 좀 급해요.”
내가 난이도 높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골몰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수술실 문이 열리고 진 박사가 들어와서 결정타를 날렸다.
“ComPa와 조이는 잘 맞을 것 같소. 무엇보다도 조이가 ComPa를 신뢰합니다. 채혈도 하고, 같이 일해 봅시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진 박사와 모모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채혈을 하고, 오 상사도 함께 HHG에 합류한다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이 폭로되었다. 진 박사는 김 박사가 한때 HHG의 요원이었으나, 훈련 과정에서 조이를 사유화하려다가 축출된 인물이라고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동안 겪어 온 김 박사의 조이에 대한 사적인 욕망과 비이성적인 태도가 비로소 모두 이해가 되었다.
모모가 만족한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ComPa! 같이 일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참, 미처 설명을 못 했는데… 조이가 아마도 ComPa를 좋아하게 될걸요.”
기지는 백룡의 추격으로 인해 모든 파워가 차단되어 여전히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계약서에 서명했음을 깨달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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