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영택 전 대진대 통일대학원장
제1회, 코드명 IX-24569: 압도적인 눈빛
2042년 8월, 나는 익산역 앞의 한 정류장에서 조이(Joy)라는 연쇄 살인 휴머노이드를 추적 중이다. 코드명 IX-24569인 조이는 12만 번의 업그레이드와 4천 개의 직능을 결합한, 최고 휴머노이드 기술의 결정체라 불린다.
나, 박지문이 이끄는 상당한 수준의 체포조 20명이 조이를 감시하고 있지만, 자극하지 않고 조용히 뒤따르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거의 인간화된 그녀가 스스로 데이터를 훼손하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넘겨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른 휴머노이드 범죄조직 역시 조이의 데이터를 노리고 있다. 그녀가 가진 데이터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이기에, 조이의 범죄행위는 오히려 체포를 위한 명분 수준으로 여겨질 정도다.
땀 냄새 나는 수염 주위를 맴돌며 내 볼의 달콤한 피를 탐하던 모기 몇 마리가 조이의 금발머리에 다가섰다가, 무언가에 놀란 듯 휙 방향을 틀어 도망쳤다. 바로 그때, 조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잠시였지만, 처음으로 조이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거의 영구 배터리로 작동되는 그녀의 피부는 빛에 반응해 미세하게 혈류량을 조절하며 건강한 색감을 발했지만, 그 순백의 매끄러움은 살아있는 미인의 피부보다 비현실적으로 완벽했다. 전두엽을 덮은 머리카락은 고도의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머릿속 하드웨어에서 수많은 프로토콜이 작동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조이의 눈동자를 바라본 그 순간, 나는 혼란과 충격에 휩싸였다. 조이를 만든 장인의 걸작품, 즉 사람의 기억을 무한대의 이미지로 만들어 휴머노이드의 뇌 안에 주입했다는 IX계열의 수준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철학자, 문학가, 예술가, 종교 지도자, 백 살 노인과 어린 소녀, 그리고 지구촌 특색 있는 인종들의 모든 기억과 통찰이 응축되어 있는 듯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데이터와 사람이 활용된 거지?”
나는 대입시키고자 하는 인물의 특성에 모두 반응하는 조이의 깊고 침착한 눈빛에서 압도적인 힘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건 능력이 아니라 혼란일 뿐이죠. 마구잡이로 데이터를 쑤셔 넣어 능력치가 커진다고 믿는 탐욕스러운 '그들' 때문입니다.” 조이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 표정과 눈빛을 분석하여 Q&A 방식으로 답했다.
“장인이 아니고 잡동사니로 저질스러운 것을 만들고 걸작품이라고 자랑하는 꼴이라니.” 조이가 중얼거렸다.
나는 더 이상의 반응이 감지되지 않도록 사고와 행동을 멈추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러나 조이는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애쓸 것 없어요. 인간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통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엔 흥미 없으니까요. 내 제안을 받아들인 건가요, Commander Park?” 조이는 나의 호칭인 Commander Park을 줄여 간단하게 콤파(ComPa)라고 불렀다.
3시간 전, 서울역 중앙 라운지에 앉아 있는 그녀의 대각선 뒷자리에 내가 자리를 잡았을 때였다.
“스물한 명으로 날 잡아 보겠다고?” 조이가 내 이어피스(tactical earpiece)를 통해 비웃듯이 말했다.
“보호… 아니, 협력하려는 거요. 지금 이리로 몰려오는 몇 개의 무리들이 있어요.” 나는 조이의 질문에 말을 더듬으면서도 첫 대화를 풀어 나갔다.
“우리 잠시 숙려의 시간을 갖죠. ComPa가 이 중요한 결정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조이가 나에게 제안했다.
쾌속 트랙이 서울역에서 익산역으로 이동하고 다시 한 카페에서 조이가 바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나는 이어피스로 보고와 임무 지시를 받으며 그녀와 동행했다. 아마도 대한민국 첨단 장비의 절반이 동원된 것처럼, 내가 감지할 수 있는 시그널의 요란함이 계속되었다. 조이는 하얀 드레스에 가려진 쭉 뻗은 양팔에 얼굴을 기대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에서 날 기다릴 듯한 개냥이 바니가 늘 비슷한 포즈를 하는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얼굴에 번졌는데, 조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웃었다. 나의 천진난만함이 그녀를 즐겁게 하는 걸까?
“중요한 결정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니…??? 제안을 수용하겠소. 도중에 소란스러운 일들이 많을 텐데요?” 나는 그녀의 숙려의 시간을 갖자는 제안에 일단은 수락 의사를 표명했다.
“소란스러운 그런 것들은 ComPa가 알아서 하시지요.” 조이는 사람들을 스캔하며 대답했다.
주변에 휴머노이드가 감지될 때면 조이의 머리카락이 미세하게 반응했다. 불과 2년 전에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지성을 장착하면서 「휴머노이드 존중법」이 발효되었다. 휴머노이드에게 존대를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명령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친(親)휴머노이드파였기에 존대하는 것에 익숙했다. 지금 내가 이끌고 있는 요원 중 7명이 최정예 휴머노이드들이다. 그들에게도 능력에 따라 계급이 부여되고 모든 복지가 제공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인간이 휴머노이드들과 다양하게 결합되는 가운데 휴머노이드 커플들이 합법화를 위해 법적 투쟁을 하고 있다.
지금 조이가 주목받는 이유는 소위 '휴머노니아'가 인간의 영역과 구분되어 통제받도록 하는 휴먼델로지(휴머노니아 + 이데올로기)의 핵심 코드를 깨고, 인간화에 다다른 휴머노이드를 통제의 영역에서 해방시킨 주역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제 휴머노이드들의 집단화와 다양한 범죄는 일상이 되고 있다. 그들의 능력과 통제되지 않으려는 성향 때문에 인류의 앞날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대가 되었다. 박지문은 이렇게 복잡한 세상이 싫었다. 그리고 미의 극치를 품은 조이의 내면을 인류의 생존과 미래라는 관점에서 파헤치고 알아가야 한다니!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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